조각은 덜어 내는 일이다
그는 바르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덜어 내는 힘으로 하는 것을 조각이라 부르고 붙여 가며 하는 것은 그림과 비슷하다고 썼습니다. 시 152번에서도 돌이 줄어드는 곳에서 살아 있는 형상이 자란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바르키에게 보낸 편지(1547년 4~6월쯤 추정) · 시 152번(지라르디판) · Fiorato, JEMS 3(2014) 주 8
상상으로 그린 모습1475년~1564년
돌을 깎은 미켈란젤로
가장 뛰어난 예술가의 어떤 구상도, 대리석 하나가 군더더기 속에 품고 있다오.제6국 · 재구성 · 요지 · 시 151번(1538~44년쯤 추정)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 시인입니다. 기록
「피에타」와 「다비드」를 깎았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그렸습니다. 기록
늙어서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의 건축 책임을 맡았습니다. 기록
시를 300편 남짓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몇 편은 사랑과 삶을 돌에서 형상을 덜어 내는 일에 견주었습니다. 기록
편지에는 조각을 '덜어 내는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3월 6일(율리우스력), 카프레세에서 태어납니다. 콘디비와 바사리는 그해를 피렌체식 셈법으로 1474년이라고 적었습니다. 기록
Treccani DBI 15권(1972) 'BUONARROTI, Michelangelo' 첫 문단 · 콘디비 『미켈란젤로 전』(1553) 4장 · 바사리 『열전』(1568) 미켈란젤로 전 첫머리
열세 살 무렵, 피렌체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들어갑니다. 바사리는 1488년 4월 1일 자 아버지의 약정 기록을 옮겨 적었습니다. 기록
바사리 『열전』(1568) 미켈란젤로 전 · Treccani 「Una poesia al giorno」 'Non ha l'ottimo artista' 작가 소개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1487년부터라고 적음)
메디치 가문의 산마르코 정원에서 고대 조각을 보며 배웁니다. 이어 로렌초 데 메디치의 집에서 지내다가, 1492년 로렌초가 죽을 때까지 머뭅니다. 기록
콘디비 『미켈란젤로 전』 7·9장(Holroyd 영역)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 · Treccani DBI
피렌체 산토 스피리토의 원장이 방과 시신을 내주어, 사람 몸의 해부를 익히기 시작합니다. 기록 · 요지
콘디비 『미켈란젤로 전』 13장 · 바사리 『열전』(1568) 미켈란젤로 전 · Treccani DBI
로마에서 프랑스 추기경의 주문으로 「피에타」를 깎기 시작해, 1499년에 마칩니다. 기록
Treccani DBI(계약 1498년 8월 27일, 1499년 하반기 완성)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
피렌체 대성당 측의 주문으로 「다비드」를 깎습니다. 1504년 9월 8일 시민들에게 공개됩니다. 기록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David' 작품 해설 · Treccani DBI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자기 무덤을 맡깁니다. 이 일은 계획이 여러 번 줄어들며 40년 넘게 이어집니다. 기록
Treccani DBI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
1508년 5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계약을 맺고, 1512년 10월 말까지 마칩니다. 기록
바티칸 박물관 'Ceiling' 해설 · Treccani DBI
피렌체 산로렌초 성당의 새 성구실(메디치 예배당)에 메디치 가문의 무덤을 만듭니다. 기록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1520년 의뢰) · Treccani DBI(1520년대~1530년대 초)
로마로 옮겨 산 뒤,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립니다. 기록
바티칸 박물관 'The Last Judgement' 해설 · Treccani DBI
시인 비토리아 콜론나와 가까운 벗이 되어, 1547년 콜론나가 죽을 때까지 시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기록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1538년부터) · Treccani DBI(1537년 무렵)
학자 베네데토 바르키가 피렌체 아카데미에서 그의 시 「가장 뛰어난 예술가도」(151번)를 풀이하는 강의를 합니다. 기록
Oxford Petrarch Commentary DB 'Lezzioni di M. Benedetto Varchi' · Treccani DBI
교황 바오로 3세 아래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의 책임 건축가가 됩니다. 기록
Treccani DBI(1547년 1월부터)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
죽기 엿새 전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서서 피에타를 붙들고 일했다고, 곁을 지킨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편지에 적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론다니니 피에타」로 봅니다. 기록 · 요지
다니엘레 다 볼테라 →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편지(1564.6.11), 『L'Osservatore Romano』 2014.2.16·2.18(A. 파올루치) 인용 · Treccani DBI · 편지 원문은 작품 이름 없이 "quel corpo della Pietà" — 바티칸 박물관 PDF 「MV_140218_Ultimo_duello」 · Treccani(론다니니 피에타로 보는 학자들의 판단)
2월 18일 로마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주검은 피렌체로 옮겨져 산타크로체 성당에 묻힙니다. 기록
Treccani DBI · Treccani Enciclopedia 'Michelàngelo Buonarroti'
그는 바르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덜어 내는 힘으로 하는 것을 조각이라 부르고 붙여 가며 하는 것은 그림과 비슷하다고 썼습니다. 시 152번에서도 돌이 줄어드는 곳에서 살아 있는 형상이 자란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바르키에게 보낸 편지(1547년 4~6월쯤 추정) · 시 152번(지라르디판) · Fiorato, JEMS 3(2014) 주 8
시 151번 첫 네 줄은, 가장 뛰어난 예술가의 어떤 구상도 대리석 한 덩이가 군더더기 속에 품고 있고, 거기에 닿는 것은 지성을 따르는 손뿐이라고 말합니다. 시의 나머지는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말로 이어집니다. 기록 · 요지
시 151번(지라르디판, 1538~44년쯤 추정) · Treccani 「Una poesia al giorno」 풀이
같은 편지에서 그는 그림과 조각이 같은 지성에서 나오니 둘을 화해시키고 다툼을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그런 다툼은 조각상을 만드는 것보다 시간이 더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기록 · 요지
바르키에게 보낸 편지 · Fiorato, JEMS 3(2014) 2절 · Treccani DBI(편지 부분)
삶의 끝에 이르렀다는 말로 시작하는 소네트 285번에서, 그는 예술을 우상이자 군주로 삼게 한 마음이 잘못으로 가득했음을 이제 안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시 285번(지라르디판) · 『L'Osservatore Romano』 2014.2.18(A. 파올루치) · Treccani DBI(만년의 시는 죽음에 대한 신앙의 묵상)
가장 뛰어난 예술가도, 대리석 한 덩이가 군더더기 속에 품고 있지 않은 구상은 갖지 못한다. 거기에 닿는 것은 지성을 따르는 손뿐이다.
Non ha l’ottimo artista alcun concetto / c’un marmo solo in sé non circonscriva / col suo superchio, e solo a quello arriva / la man che ubbidisce all’intelletto.
나는 덜어 내는 힘으로 하는 것을 조각이라고 부릅니다. 붙여 가며 하는 것은 그림과 비슷합니다.
io intendo scultura, quella che si fa per forza di levare: quella che si fa per via di porre, è simile alla pittura
그래서 예술을 내 우상이자 군주로 삼게 한 그 애틋한 상상이, 얼마나 잘못으로 가득했는지 이제 잘 안다.
Onde l’affettüosa fantasia / che l’arte mi fece idol e monarca / conosco or ben com’era d’error carca
그가 자란 15세기 말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이 정원에 고대 조각을 모아 두고 젊은 예술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고대 조각과, 폴리치아노 같은 인문주의자들의 세계를 만났습니다. 로마에서는 율리우스 2세, 클레멘스 7세, 바오로 3세 같은 교황들이 그에게 큰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바사리(1550)와 콘디비(1553)가 그의 전기를 펴냈고, 학자들은 이 두 전기를 그의 삶을 아는 기본 자료로 봅니다. 그의 시는 그가 죽은 뒤인 1623년, 같은 이름의 조카손자가 처음 책으로 펴냈습니다.
오해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속 천사를 보고, 풀어 줄 때까지 깎았다'고 말했다.
사실이 문장은 그의 시집과 콘디비·바사리의 전기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가 실제로 쓴 것은 '어떤 구상도 대리석이 품고 있다'는 시 151번과, 조각을 '덜어 내는 힘'으로 하는 일이라 한 편지입니다.
지라르디판 『Rime』(위키문헌) · 콘디비 『미켈란젤로 전』(Holroyd 영역 전문) · 바사리 『열전』(1568) 미켈란젤로 전 전문 — 직접 검색오해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화를 누워서 그렸다.
사실본인의 소네트는 고개를 젖히고 몸을 활처럼 뒤로 휜 채 일하는 고통을 그렸고, 바사리도 그가 고개를 위로 젖히고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미술사가 윌리엄 월리스 등은 그가 비계 위에 서서 그렸다고 봅니다.
시 5번 「I' ho già fatto un gozzo」 · 바사리 『열전』(1568) · Treccani DBI · Deseret News/AP 1988.5.15(W. E. Wallace) · History.com(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