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하이젠베르크 — 상상으로 그린 모습상상으로 그린 모습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01년~1976년

양자역학의 하이젠베르크

과학자에게 합리적인 생각과 꼼꼼한 측정은, 조각가의 망치와 끌 같은 것입니다.
제6국 · 재구성 · 인용 · 1970년 강연 「정밀 자연과학에서 아름다움의 의미」

소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입니다. 기록

1925년 행렬역학의 출발점이 된 논문을 썼습니다. '양자역학을 세운 공로'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고, 상은 1933년에 받았습니다. 기록

1927년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함께 정확히 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관계를 내놓았습니다. 기록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핵분열 연구를 이끈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그 역할은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논쟁 중

회고록 『부분과 전체』(1969)와 여러 강연에서 과학과 철학,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록

생애 연표

  1. 1901

    12월 5일,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 아우구스트 하이젠베르크는 훗날 뮌헨 대학의 그리스어 교수가 됩니다. 기록

    노벨상 공식 페이지 'Werner Heisenberg – Facts'·'Biographical' · MacTutor 'Werner Heisenberg'

  2. 1920

    뮌헨 대학에 들어가 아르놀트 조머펠트 밑에서 물리학을 배웁니다. 기록

    노벨상 'Biographical' · AIP 웹 전시 'A Brief Chronology' · MacTutor

  3. 1923

    뮌헨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괴팅겐 대학에서 막스 보른의 조수가 됩니다. 기록

    노벨상 'Biographical' · MacTutor(학위 논문은 유체의 난류)

  4. 1924~25

    괴팅겐에서 강의 자격을 얻은 뒤,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에게 가서 함께 연구합니다. 기록

    노벨상 'Biographical' · AIP 'A Brief Chronology' · MacTutor

  5. 1925

    6월, 심한 꽃가루 알레르기를 피해 북해의 헬골란트 섬에 머뭅니다. 그곳에서 계산이 맞아떨어진 밤의 이야기는 44년 뒤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기록

    『부분과 전체』(1969) 헬골란트 대목(Sträuli-Eisenbeiss 인용 독일어 원문) · Physics World 'Return to Helgoland'

  6. 1925

    관찰할 수 있는 양만으로 원자를 다루려는 논문을 『Zeitschrift für Physik』 33권에 냅니다. 이 생각은 보른·요르단과 함께 행렬역학으로 다듬어집니다. 기록

    AIP 'The Quantum Mechanic'·'A Brief Chronology'(Zs. f. Phys. 33, 879–893) · 노벨상 'Biographical' · SEP 'The Uncertainty Principle' 참고문헌

  7. 1927

    불확정성 관계를 밝힌 논문을 『Zeitschrift für Physik』 43권에 냅니다. 기록

    AIP 'A Brief Chronology'(Zs. f. Phys. 43, 172–198) · SEP 'The Uncertainty Principle' §2

  8. 1927

    라이프치히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가 됩니다. 기록

    노벨상 'Biographical' · AIP 'A Brief Chronology' · MacTutor

  9. 1932

    '양자역학을 세운 공로'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됩니다. 상은 이듬해인 1933년에 받습니다. 기록

    노벨상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32'·'Facts' · AIP 'A Brief Chronology'

  10. 1939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육군이 맡긴 핵분열 연구에 들어가, 전쟁 내내 그 연구의 중심 인물로 일합니다. 기록

    AIP 'Fission Research'·'A Brief Chronology' · MacTutor

  11. 1941

    독일이 점령한 코펜하겐을 찾아 보어와 핵분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대화가 무슨 뜻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논쟁 중

    AIP 'A Brief Chronology'·'Fission Research' · Physics World 'New letters expose war-time secrets'(2002.2.6)

  12. 1945~1946

    전쟁이 끝날 무렵 연합군에 붙잡혀, 1945년 7월 3일부터 이듬해 1월 3일까지 반년 동안 다른 독일 과학자 아홉 명과 함께 영국의 팜홀에 억류됩니다. 그곳의 대화는 몰래 녹음되었습니다. 기록

    AIP 'A Brief Chronology'(1945 July-Dec. Farm Hall · 1946. 3 Jan. Released) history.aip.org · AIP 'Fission Research'(Heisenberg and nine other German scientists for six months) history.aip.org · Atomic Heritage Foundation 'German Atomic Bomb Project'(July 3, 1945 to January 3, 1946) ahf.nuclearmuseum.org

  13. 1946

    독일로 돌아와 괴팅겐에서 물리학 연구소를 다시 세웁니다. 이 연구소는 1948년 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가 되고, 1958년 뮌헨으로 옮깁니다. 기록

    노벨상 'Biographical' · AIP 'A Brief Chronology' · MacTutor

  14. 1969

    회고록 『부분과 전체』를 펴냅니다. 이듬해 1970년에는 바이에른 예술원에서 「정밀 자연과학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강연합니다. 기록

    Sträuli-Eisenbeiss 글의 참고문헌(Der Teil und das Ganze, München 1969) · SEP 'The Uncertainty Principle' 참고문헌 · inters.org 강연 영역(1970.7.9) · Ketterer Kunst 경매 해설

  15. 1976

    2월 1일, 뮌헨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기록

    노벨상 'Facts' · AIP 'A Brief Chronology' · MacTutor

핵심 생각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이론을 세우자

그는 원자 속 전자의 궤도는 관찰할 수 없으니, 원자가 내고 받는 빛처럼 관찰할 수 있는 양만으로 새 역학을 세우려 했습니다. 1925년 논문의 요약도 원리상 관찰할 수 있는 양들 사이의 관계에만 기대겠다고 밝힙니다. 기록 · 요지

AIP 'The Quantum Mechanic'(1925년 논문 요약과 파울리에게 보낸 편지 인용) · 노벨상 'Biographical'

위치와 운동량은 함께 정확히 정해지지 않는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함께 재려 하면, 두 값의 부정확함을 곱한 값이 일정한 크기보다 작아질 수 없습니다. 그는 이것이 실험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Heisenberg, Zs. f. Phys. 43(1927) · AIP 'The Uncertainty Principle' · 노벨상 'Biographical' · SEP 'The Uncertainty Principle' §2

아름다움은 부분과 전체가 맞아떨어지는 것

1970년 강연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부분들끼리, 그리고 부분과 전체가 바르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는 옛 정의로 풀었습니다. 그리고 정밀 자연과학에서도 예술에서처럼 아름다움이 빛과 맑음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록 · 요지

「Die Bedeutung des Schönen in der exakten Naturwissenschaft」(1970.7.9 강연) — 독일어 발췌 2종(hoye.de, Sträuli-Eisenbeiss) · 영역 전문(inters.org)

생각과 측정은 도구일 뿐이다

같은 강연에서 그는 합리적인 생각과 꼼꼼한 측정이 과학자에게는 조각가의 망치와 끌 같은 도구일 뿐, 일의 내용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옳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을 두고는,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말한 것처럼 영혼이 이미 지니고 있던 것을 기억해 내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1970년 강연 끝부분 — 독일어 발췌 2종(hoye.de, Sträuli-Eisenbeiss) · 영역 전문(inters.org)

남긴 말

나는 원자 현상의 겉을 지나, 그 아래 깊이 놓인 묘한 내적 아름다움을 지닌 바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Ich hatte das Gefühl, durch die Oberfläche der atomaren Erscheinungen hindurch auf einen tief darunterliegenden Grund von merkwürdiger innerer Schönheit zu schauen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1969) 헬골란트 대목 기록 · 인용
이 합리적인 생각과 꼼꼼한 측정은, 조각가의 일에 망치와 끌이 있듯 자연 연구자의 일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둘 다 도구일 뿐, 일의 내용은 아닙니다.

Zwar gehören dieses rationale Denken und das sorgfältige Messen zur Arbeit des Naturforschers so wie Hammer und Meißel zur Arbeit des Bildhauers. Aber sie sind in beiden Fällen nur Werkzeug, nicht Inhalt der Arbeit.

강연 「정밀 자연과학에서 아름다움의 의미」(1970.7.9, 뮌헨 바이에른 예술원) 기록 · 인용
그것은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말한 놀라움 섞인 떨림입니다. 그때 영혼은, 무의식 속에 늘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마치 다시 기억해 내는 듯합니다.

Es ist das staunende Erschrecken, von dem Plato im ›Phaidros‹ spricht, mit dem die Seele sich gleichsam an etwas zurückerinnert, was sie unbewußt doch immer schon besessen hatte.

강연 「정밀 자연과학에서 아름다움의 의미」(1970.7.9) 기록 · 인용

시대와 영향

1920년대 초 물리학자들은 옛 양자론으로는 원자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역학을 찾고 있었습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한 뒤, 그의 이론물리학은 나치 쪽 신문에서 '유대적'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1925년에 연 행렬역학은 보른·요르단과 함께 다듬어졌고, 1926년 슈뢰딩거는 이것이 파동역학과 수학적으로 같은 이론임을 보였습니다. 전쟁 뒤에는 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를 이끌고, 독일 연구 협의회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회장을 맡아 서독 과학을 다시 세우는 데 힘썼습니다.

흔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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