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말총으로 엮은 검은 탕건을 쓰고 흰 창의를 입은, 긴 수염의 김정희를 상상해 그린 모습.상상으로 그린 모습

김정희

1786년~1856년

『철종실록』 철종 7년 음력 10월 10일 졸기(양력 1856년 11월 7일)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다던 김정희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될 수 없고, 맨손으로 용을 잡을 수 없다오. 많이 그려 본 뒤에야 되오.
제10국 · 재구성 · 기록 · 요지 · 「제석파난권」

소개

김정희는 조선의 학자입니다. 호는 추사·완당이고, 「추사체」라는 자기 글씨를 남겼습니다. 기록

나라의 기록인 실록은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초서·해서·전서·예서의 여러 글씨체에서 참된 경지를 깨쳤다고 적었습니다. 기록 · 요지

1840년 제주 대정현으로 귀양 가 울타리 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 섬에서, 지금은 국보가 된 「세한도」를 그린 것으로 봅니다(1844년은 학계의 비정). 기록

난초 그림을 두고, 많이 그린 뒤에야 할 수 있다고 쓰고, 이어서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는 거의 다 할 수 있어도 나머지 한 분이 가장 이루기 어렵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자기 글씨는 말할 것도 없다고 낮추면서, 일흔 해 동안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생애 연표

  1. 1786

    태어납니다.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정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1840

    헌종 6년 음력 9월 4일, 국문을 받은 죄인으로 제주 대정현에 귀양 가 울타리 안에 갇히는 벌(위리안치)을 받습니다. 기록

    『헌종실록』 헌종 6년 9월 4일 「鞫囚罪人正喜,大靜縣圍籬安置」 조선왕조실록

  3. 1842

    음력 11월 13일 아내 예안 이씨가 예산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부고는 다음 달 15일 저녁에야 바다 건너 귀양지에 닿았습니다. 그는 위패를 차려 곡하고, 글을 지어 집으로 보내 제사 때 영전에 고하게 했습니다. 기록

    『완당전집』 권7 「부인예안이씨애서문」 「壬寅十一月乙巳朔十三日丁巳。夫人示終於禮山之楸舍」 「粤一月乙亥朔十五日己丑夕。始傳訃到海上」 db.itkc.or.kr

  4. 1844

    「세한도」를 그려, 먼 데서 책을 구해 보내 준 제자 역관 이상적(호 우선)에게 줍니다. 발문에는 지난해와 올해 이상적이 책을 보내 왔다고 적고, 세상이 권세와 이익만 좇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기록 · 연도는 학계의 비정

    「세한도」 관지 「藕船是賞」 · 발문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今年又以藕畊文編寄來」 「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不以歸之權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정희 필 세한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상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1848

    헌종 14년 음력 12월 6일, 귀양에서 풀려납니다. 기록

    『헌종실록』 헌종 14년 12월 6일 「李穆淵、趙秉鉉、金正喜,放」 조선왕조실록

  6. 1851

    철종 2년 음력 7월 22일, 다시 북청으로 귀양 갑니다. 기록

    『철종실록』 철종 2년 7월 22일 「北靑府遠竄」 조선왕조실록

  7. 1856

    철종 7년 음력 10월 10일, 실록이 전 참판 김정희가 세상을 떠났다고 적습니다. 젊어서 이름을 떨쳤으나 집안의 화를 만나 남쪽과 북쪽으로 귀양 가 온갖 풍상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철종실록』 철종 7년 10월 10일 졸기 「前參判金正喜卒」 「早歲蜚英,中罹家禍,南竄北謫,備經風霜」 조선왕조실록

  8. 1857

    화가 이한철이 김정희 영정을 그립니다. 이 영정은 보물 「김정희 종가 유물」에 함께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록

    국가유산청 「김정희 종가 유물」(보물) — 「철종 8년(1857) 이한철이 그린 김정희영정」 khs.go.kr

  9. 2020

    국보 「세한도」가 기증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증10000)이 됩니다.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 「국보 제 180호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품으로...」(2020-08-20, 손창근 선생의 「세한도」 기증) museum.go.kr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김정희 필 세한도」(증10000, 국보) museum.go.kr

핵심 생각

마지막 한 분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는 거의 다 할 수 있어도 나머지 한 분이 가장 이루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한 분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힘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분(分)」을 만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은 해석입니다. 기록 · 요지 · 「분」 풀이는 해석

『완당전집』 권6 「제석파난권」 「雖到得九千九百九十九分。其餘一分最難圓」 db.itkc.or.kr

많이 그린 뒤에야

「제석파난권」에서 그는 마지막 한 분 이야기에 앞서, 난 그림의 품격(畵品)을 두고 많이 그린 뒤에야 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될 수 없으며 맨손으로 용을 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 역관 오경석에게는, 구천구백구십구 분에 이르러도 마지막 한 분의 공부는 지극히 어렵다고 쓰고 「努力加餐」이라 적었습니다. 이 말은 「고시십구수」에서 온, 몸을 잘 돌보라는 인사로 읽기도 하고,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은 「끝까지 노력해야만 되는 거라네」로 옮겼습니다. 기록 · 다른 읽기 있음

『완당전집』 권6 「제석파난권」 「又多作然後可能 不可以立地成佛 又不可以赤手捕龍」(「雖到得九千九百九十九分」 앞) db.itkc.or.kr · 권4 「여오생」 「雖到得九千九百九十九分 其一分之工極難圓 努力加餐可耳」 db.itkc.or.kr · 국역(신호열 역, 1988) db.itkc.or.kr

서너 장을 넘기지 않는다

아들이 종이를 많이 보내 난초 그림을 여러 장 청하자, 난은 한 번에 서너 장을 넘겨 그릴 수 없고 기운이 모이고 처지가 어울려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난 치는 법은 예서와 가까워,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책의 기운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완당전집』 권2 「여우아」 「蘭法亦與隷近。必有文字香書卷氣然後可得」 「寫蘭不得過三四紙。神氣之相湊。境遇之相融」 db.itkc.or.kr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세한도」 발문에서 그는 『논어』의 말을 빌려,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고 썼습니다. 귀양 간 자신을 잊지 않은 제자를 그 나무에 견준 글입니다. 기록 · 요지

「세한도」 발문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 『논어』 자한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松柏 = 소나무와 측백나무, 국립중앙박물관 풀이)

남긴 말

구천구백구십구 분에 이르더라도 그 나머지 한 분이 가장 이루기 어렵다.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는 거의 다 할 수 있다. 이 한 분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힘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雖到得九千九百九十九分。其餘一分最難圓。就九千九百九十九分。庶皆可能。此一分非人力可能。亦不出於人力之外

『완당전집』 권6 「제석파난권」 — 한국고전종합DB 한국문집총간 표점본 db.itkc.or.kr 기록 · 인용
또 많이 그린 뒤에야 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될 수 없고, 맨손으로 용을 잡을 수도 없다.

又多作然後可能。不可以立地成佛。又不可以赤手捕龍

『완당전집』 권6 「제석파난권」 db.itkc.or.kr 기록 · 인용
내 글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일흔 해 동안 벼루 열 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다 닳게 하면서도, 편지 쓰는 법은 한 번도 익힌 적이 없다.

吾書雖不足言。七十年。磨穿十硏。禿盡千毫。未甞一習簡札法

『완당전집』 권3 「여권이재」 db.itkc.or.kr 기록 · 인용
형틀이 앞에 있고 귀양길이 뒤따를 때에도 내 마음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 하나를 잃고는, 놀라고 흩어져 그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다.

吾桁楊在前。嶺海隨後。而未甞動吾心也。今於一婦人之喪也。驚越遁剝。無以把捉其心

『완당전집』 권7 「부인예안이씨애서문」 db.itkc.or.kr 기록 · 인용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도」 발문(국립중앙박물관 증10000) — 『논어』 자한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를 인용 기록 · 인용

시대와 영향

김정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 대정현에서 울타리 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동안 역관이었던 제자 이상적은 북경에서 구한 책을 먼 데서 보내 주었고, 「세한도」 발문은 그 일을 적고 있습니다. 귀양 중이던 1842년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부고는 한 달 남짓 지나서야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세한도」는 국보이며, 2020년 기증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합니다. 1857년 이한철이 그린 그의 영정은 보물 「김정희 종가 유물」에 함께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글과 편지는 『완당전집』으로 엮였고, 한국고전종합DB에서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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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자료

빛바랜 종이에 먹으로 그린 겨울 풍경. 둥근 창이 난 낮은 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나무가 서 있고, 오른쪽 위에 한자 제목과 붉은 도장이 있다.

「세한도」(歲寒圖) 그림 부분 1844년(학계의 비정)

실제 작품

김정희가 제주 귀양지에서 그려, 먼 데서 책을 구해 보내 준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입니다. 집 한 채, 나무 몇 그루, 그리고 텅 빈 자리. 오른쪽 위에 「歲寒圖」라는 제목과 「藕船是賞 阮堂」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ommons.wikimedia.org

세로줄로 빽빽이 쓴 한문 글씨, 왼쪽 아래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세한도」 발문 1844년(학계의 비정)

실제 작품(글)

그림 끝에 김정희가 붙인 글입니다. 귀양 간 자신을 잊지 않고 먼 데서 책을 구해 보내 준 제자의 일을 적고, 『논어』의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를 인용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ommons.wikimedia.org · 변경: 이음 오류 부분을 빼고 발문 칸만 자름

오사모(사모)를 쓰고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검은 단령(관복) 차림으로 호피를 깐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 초상. 가슴에 학 두 마리를 수놓은 흉배가 있다.

이한철 「김정희 영정」 1857

실제 초상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57년, 화가 이한철이 그린 영정입니다. 보물 「김정희 종가 유물」에 함께 지정되어 있습니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ommons.wikimedia.org

누런 종이에 큰 해서로 세로줄 여러 줄을 쓰고, 왼쪽에 작은 글씨로 「實事求是箴」이라 적은 글씨 작품.

김정희 글씨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연대 미상

실제 작품(글씨)

추사 김정희의 글씨 「실사구시잠」입니다. 영상에서 「추사체」를 소개할 때 나온 글씨입니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ommons.wikimedia.org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초가지붕을 얹은 돌집 몇 채가 서 있고, 앞에 나무 막대로 된 문이 놓여 있다.

제주 대정 김정희 유배지 1984년 복원 · 사진 2022년

오늘의 모습(사진)

김정희가 1840년부터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낸 제주 대정의 유배지입니다. 지금의 집은 1984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Trainholic, "Kim Jeong-hui's Home in Exile.jpg", CC BY-SA 4.0 (creativecommons.org), Wikimedia Commons — commons.wikimedia.org · CC BY-SA 4.0

등장한 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