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힘
그의 유파는 긴 칼도 한 손으로 휘두르게 익힙니다. 칼은 처음엔 무거워 휘두르기 어렵지만, 휘둘러 익으면 길의 힘을 얻어 휘두르기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칼의 길은 빨리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 땅의 권 「此一流二刀と名付る事」 조 「太刀重くて振廻しがたき物なれども … 太刀も振つけぬれバ、道の力を得て振よくなる也」 「太刀の道と云事、はやく振にあらず」 — musasi.siritai.net
상상으로 그린 모습1645년 몰
正保 2년 음력 5월 19일, 히고 구마모토에서(고쿠라 비문). 태어난 해는 이 사전의 원전 범위에서 다루지 않음
칼은 조용히 휘두르라던 무사시
칼의 길은, 빨리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오. 휘두르기 좋을 만큼, 조용히.제10국 · 재구성 · 기록 · 요지 · 땅의 권 · 물의 권
미야모토 무사시는 1645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검객입니다. 예순 무렵, 자기 병법을 적은 『오륜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
스스로 쓴 바에 따르면, 열세 살부터 스물여덟아홉 살까지 예순 번 넘게 겨뤄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른을 넘어 돌아보니, 병법을 다 알아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고 적었습니다. 기록 · 본인 서술
그 뒤 아침저녁 단련한 끝에, 쉰 무렵 저절로 병법의 길에 닿았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에서 그는 칼의 길이 빨리 휘두르는 데 있지 않고, 휘두르기 좋을 만큼 조용히 휘두르는 데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은 너무 조이지도 늦추지도 말고, 한가운데 두어 고요히 흔들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그림도 남겼습니다. 마른 가지 끝의 때까치를 그린 수묵화 「고목명격도」는 일본 중요문화재입니다. 기록
열세 살 때 처음 겨룬 뒤로 스물여덟아홉 살까지, 예순 번 넘게 겨뤄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오륜서』 자서에 스스로 적었습니다. 기록 · 본인 서술
『오륜서』 자서 「六十餘度迄勝負をすといへども、一度も其利をうしなはず」 — 오륜서연구회 전사 musasi.siritai.net · 사본 대조 musasi.siritai.net
岩流라는 상대와 겨뤄 나무칼로 한 번 쳐서 죽였다고, 뒷날 양자가 세운 고쿠라 비문에 새겨져 있습니다. 같은 비문에는 그 섬을 사람들이 岩流嶋(간류지마)라 고쳐 불렀다는 말도 있습니다. 기록
고쿠라 비문(1654) 「武藏、木刄の一撃を以て之を殺す」 「俗、舟嶋を改めて岩流嶋と謂ふ」 — 오륜서연구회 전사 musasi.siritai.net
서른을 넘어 지난 일을 돌아보니, 병법을 다 알아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 자서 「兵法至極してかつにハあらず」 — musasi.siritai.net
그 뒤 아침저녁 단련하니 쉰 무렵 저절로 병법의 길에 닿았고, 그 뒤로는 더 찾아 들어갈 길 없이 세월을 보냈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 자서 「朝鍛夕錬して見れバ、をのづから兵法の道に逢事、我五十歳の比也。それより以來は、尋入べき道なくして光陰を送る」 — musasi.siritai.net
寛永 20년 음력 10월 상순, 규슈 히고의 이와토산에 올라 기도한 뒤 『오륜서』를 쓰기 시작합니다. 자서에 나이를 예순이라 적었고, 붓을 든 때는 10월 10일 밤이라고 했습니다. 기록
『오륜서』 자서 「寛永二十年十月上旬の比、九州肥後の地岩戸山に上り」 「年つもりて六十」 「十月十日の夜、寅の一天に筆をとつて、書始る」 — musasi.siritai.net
細川家本 『오륜서』는 권마다 끝에 맺음 글을 두었습니다. 물의 권 끝에는 正保 2년 5월 12일 날짜와 「新免武蔵」 서명, 받는 이 「寺尾孫丞殿」이 적혀 있습니다. 무사시가 직접 쓴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이런 사본으로 전합니다. 기록
細川家本 물의 권 끝 「正保二年五月十二日 新免武蔵 寺尾孫丞殿」 — 오륜서연구회 사본 전사 musasi.siritai.net (땅의 권 끝의 같은 맺음 글은 musasi.siritai.net)
正保 2년 음력 5월 19일, 히고 구마모토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기록
고쿠라 비문(1654) 「正保二乙酉暦五月十九日、肥後國熊本に卒す」 — musasi.siritai.net
양자 미야모토 이오리가 고쿠라에 비를 세웁니다. 비문에는 그의 겨룸과 죽음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록
고쿠라 비문 「時に、承應三甲午年四月十九日、孝子、敬して焉を建つ」 — musasi.siritai.net
도요타 가게히데(豊田景英)가 전기 『이천기』(二天記)를 엮습니다. 전하는 사본의 권말에 그가 쓴 安永 丙申(1776년) 날짜가 있습니다. 간류지마 결투의 널리 알려진 세부는 대부분 이 같은 후대 전기에서 왔습니다. 기록 · 결투 세부는 전승
『二天記』 사본(享和 원년 1801년 필사) 서지 — 국립국회도서관 서치(NDL Search) 「巻末: 安永丙申仲冬日 豊田景英子俊書」 「豊田景英校」(安永 丙申 = 1776년) ndlsearch.ndl.go.jp
그가 그린 수묵화 「고목명격도」가 4월 30일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됩니다. 이즈미시가 소유하고 이즈미시 구보소 기념미술관에 있습니다. 기록
문화청 国指定文化財等データベース 「紙本墨画枯木鳴鵙図〈宮本武蔵筆/〉」 kunishitei.bunka.go.jp
그의 유파는 긴 칼도 한 손으로 휘두르게 익힙니다. 칼은 처음엔 무거워 휘두르기 어렵지만, 휘둘러 익으면 길의 힘을 얻어 휘두르기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칼의 길은 빨리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고 썼습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 땅의 권 「此一流二刀と名付る事」 조 「太刀重くて振廻しがたき物なれども … 太刀も振つけぬれバ、道の力を得て振よくなる也」 「太刀の道と云事、はやく振にあらず」 — musasi.siritai.net
물의 권 「太刀の道」 조에서 그는 칼은 휘두르기 좋을 만큼 조용히 휘두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조에는 팔꿈치를 크게 펴서 강하게 휘두르는 것이 칼의 길이라는 문장도 있어, 힘을 아예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록 · 요지
『오륜서』 물의 권 「太刀の道」 조 「太刀ハ、振よきほどに、静に振心也」 「いかにも大にひぢをのべて、強く振る事、是太刀の道也」 — musasi.siritai.net
싸울 때의 마음가짐을 두고, 마음을 너무 조이지도 조금도 늦추지도 말고 한가운데 두어, 고요히 흔들리게 하되 그 흔들림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게 하라고 썼습니다. 같은 조 끝에는 「움직임 없는 마음」(うごきなき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대목을 「느긋한 흔들림」으로 읽는 학자도 있습니다. 기록 · 다른 읽기 있음
『오륜서』 물의 권 「兵法心持」 「きつくひつぱらず、すこしもたるまず」 「心をまん中に置て、心を静にゆるがせて、其ゆるぎのせつなも、ゆるぎやまぬやうに」 — musasi.siritai.net · 다른 읽기 「ゆったりとしたゆらぎ」(오륜서연구회)
병법의 이치를 따라 여러 재주의 길로 삼으니, 어떤 일에도 자기에게 스승이 없었다고 썼습니다. 흔히 칼에서 닿은 길이 그림과 글로 가는 새 길이 되었다고 읽지만, 오륜서연구회는 여기서 말한 재주(諸藝諸能)를 무예로만 읽습니다. 기록 · 다른 읽기 있음
『오륜서』 자서 「兵法の利に任て、諸藝諸能の道となせバ、万事におゐて、われに師匠なし」 — musasi.siritai.net · 다른 읽기: 오륜서연구회
아침저녁으로 단련해 보니, 저절로 병법의 길에 닿은 것이 내 나이 쉰 무렵이다.
朝鍛夕錬して見れバ、をのづから兵法の道に逢事、我五十歳の比也。
칼의 길이라 하는 것은, 빨리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
太刀の道と云事、はやく振にあらず
칼은 휘두르기 좋을 만큼 조용히 휘두르는 마음이다.
太刀ハ、振よきほどに、静に振心也
마음을 한가운데 두고, 마음을 고요히 흔들리게 하여, 그 흔들림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게.
心をまん中に置て、心を静にゆるがせて、其ゆるぎのせつなも、ゆるぎやまぬやうに
『오륜서』는 무사시가 예순 무렵 규슈 히고(지금의 구마모토)에서 쓰기 시작한 책입니다. 무사시가 직접 쓴 원본은 남아 있지 않아, 細川家本·楠家本·吉田家本 같은 사본을 서로 맞대어 읽습니다. 사본마다 가나 표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9년 뒤, 양자 미야모토 이오리가 고쿠라에 비를 세워 그의 겨룸과 죽음을 새겼습니다. 무사시가 간류지마에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왔다는 이야기처럼 널리 퍼진 세부는 1776년 『이천기』 같은 후대 전기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수묵화 「고목명격도」는 1935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오해무사시는 평생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사실『오륜서』 자서에서 그는 열세 살부터 스물여덟아홉 살까지 예순 번 넘게 겨뤄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기간을 스스로 그 나이까지로 한정했고, 이 숫자는 그가 스스로 적은 것입니다.
『오륜서』 자서 「其程、年十三より二十八九迄の事也」 — musasi.siritai.net오해간류지마 결투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으로 확인된다.
사실그가 세상을 떠나고 9년 뒤인 1654년 양자가 세운 고쿠라 비문에는, 岩流라는 상대를 나무칼로 한 번 쳐서 죽였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무사시가 약속 시간에 늦게 갔다거나 배의 노를 깎아 칼로 썼다는 세부는 1776년 『이천기』 같은 후대 전기에서 온 전승입니다.
고쿠라 비문 「岩流、三尺の白刄を手にして來たり」 「武藏、木刄の一撃を以て之を殺す」 — musasi.siritai.net · 『二天記』(1776, 豊田景英)오해『오륜서』는 무사시가 동굴에 들어가 썼다.
사실자서에는 1643년 음력 10월 상순 이와토산에 올라 기도한 일과, 10월 10일 밤에 붓을 들어 쓰기 시작한 일만 적혀 있습니다. 쓴 곳이 산속 동굴(영암동)이라는 것은 후대의 전승입니다. 오륜서연구회도 주석에서, 자서는 이와토산에서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짚습니다.
『오륜서』 자서 「九州肥後の地岩戸山に上り」 「十月十日の夜、寅の一天に筆をとつて、書始る」 — musasi.siritai.net(같은 쪽 주석)오해「천 날의 연습을 단련, 만 날의 연습을 연마라 한다」가 실린 물의 권 끝 글은 무사시가 쓴 원고 그대로 전한다.
사실이 구절은 『오륜서』 물의 권 끝에 있고 細川家本·楠家本·吉田家本 사본에 모두 전합니다. 오륜서연구회는 이 구절을 무사시의 가르침으로 읽으면서도, 지금 전하는 물의 권 끝 글은 제자 데라오 손노조가 무사시의 초고를 엮은 것이고 그 과정에서 문장의 차례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오륜서』 물의 권 끝 「千日の稽古を鍛とし、万日の稽古を錬とす」 — 오륜서연구회 풀이 「武蔵の金言集に算えられる言葉」 「寺尾孫之丞の編集文」 musasi.siritai.net · 사본 대조 musasi.siritai.net오해무사시가 직접 그린 자화상이 남아 있다.
사실구마모토 시마다 미술관의 「宮本武蔵肖像」은 미술관 표기로 작자 미상이고, 일본 관광청 다국어 해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린 초상으로 봅니다. 위키미디어 공용의 파일 이름 「Self-Portrait」는 맞지 않는 이름표입니다. 이 사전의 그림도 무사시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후대에 그린 상상화입니다.
시마다 미술관 「宮本武蔵肖像」 shimada-museum.net · 일본 관광청 다국어 해설 mlit.go.jp
검객 무사시가 그린 수묵화입니다. 가는 마른 가지 끝에 때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1935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즈미시 구보소 기념미술관에 있습니다.
和泉市久保惣記念美術館 소장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ommons.wikimedia.org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그린 무사시입니다. 무사시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후대에 전설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린 장면입니다. 이 사전의 초상도 이 판화의 얼굴 쪽을 자른 것입니다.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Public Domain — dl.ndl.go.jp · 변경: 스캔 여백·색 막대를 잘라 냄

무사시가 세상을 떠나고 9년 뒤인 1654년, 양자 미야모토 이오리가 세운 비석입니다. 겨룬 상대를 나무칼로 쳐 죽였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결투 이야기의 세부는 후대의 전승입니다.
速日, "小倉碑文.jpg", CC BY-SA 4.0 (creativecommons.org), Wikimedia Commons — commons.wikimedia.org · 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