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삭발한 머리에 갈색 승복을 입고 어깨에 갈색 조각보 무늬 가사를 두른 도겐을, 가마쿠라 시대 초상(후쿠이 호쿄지 소장)을 바탕으로 그린 세피아 판화풍 초상.상상으로 그린 모습

도겐

1200~1253년

생몰 연도는 음력입니다. 1253년 8월 28일 교토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고, 『福井県史』는 「五四歳であった」(54세, 세는나이)로 적습니다. 나이는 모두 세는나이입니다.

몸으로 겪은 일본 조동종의 스님 도겐

법이 몸과 마음에 아직 덜 찼을 땐 이미 넉넉하다 여기고, 가득 차면 한쪽이 모자란 듯 느끼지요.
제15국 · 재구성 · 두 사람의 글로 다시 그린 가상의 대화

소개

도겐(1200~1253)은 일본 조동종을 연 스님이고, 『정법안장』을 20여 년에 걸쳐 쓴 선승입니다. 영상은 그를 「몸으로 겪은 일본 조동종의 스님」으로 소개합니다. 기록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산속 절로 들어갔고, 「사람이 본래 부처라면 옛 부처들은 왜 그토록 수행했을까」라는 물음을 품어 그 답을 찾아 스물넷(세는나이)에 송나라로 건너갔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建撕記』 등 행장류가 전하는 것이고, 1223년에 바다를 건넌 일 자체는 기록입니다. 전승

1223년 5월 배 위에서 만난 요리사와, 두 달 뒤 천동산에서 나눈 문답을 도겐은 『전좌교훈』에 적었습니다. 훗날 그는 글자를 조금이나마 알고 공부를 깨친 것이 그 요리사의 큰 은혜라고 썼습니다. 기록

송나라에서 돌아온 뒤 『변도화』(1231)에 「수행과 깨달음은 하나(修證一等)」라고 적었고, 『전좌교훈』에는 밥 짓는 일을, 『정법안장』에는 얼굴 씻는 법과 뒷간 쓰는 법까지 몸의 일을 수행으로 적었습니다. 「洗浄」 권은 몸을 씻어 깨끗이 하는 법을 말하면서 「作法これ宗旨なり」(몸가짐의 법도가 곧 가르침의 알맹이)라고 적습니다. 기록

도겐은 수행을 이름과 이익을 위한 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학도용심집』에는 불법 수행은 자신을 위해서도 하지 않거늘 하물며 이름과 이익을 위해 닦겠느냐는 글이 있습니다. 기록 · 요지

생애 연표

  1. 1200

    음력 정월 2일 교토에서 태어났다고 전합니다. 『福井県史』는 아버지를 村上源氏의 久我通親으로 보지만 실부를 그의 아들 道具로 보는 설도 있어 확정되지 않았다고 적고, 태어난 장소도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3세에 아버지를, 8세에 어머니를 잃었다고 전합니다. 전승 · 논쟁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道元の入宋」(『建撕記』 등 행장류에 따른 서술)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2. 1213

    열네 살 4월 9일 천태좌주 公円에게 머리를 깎고 도겐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福井県史』는 이 무렵 천태 교학을 배우며 「본래 부처라면 왜 수행했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서술합니다. 전승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道元の入宋」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3. 1223

    스물넷의 2월 22일 스승 明全과 교토를 떠나 하카타에서 배를 타고 4월 명주 경원부(닝보)에 닿고, 7월 천동산 경덕사에 들어갑니다. 『전좌교훈』에 따르면 5월 배 위에서 만난 요리사에게 「무엇이 글자이고 무엇이 공부입니까」를 먼저 물었지만 요리사는 바로 답하지 않았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온 세상이, 감춘 적이 없다」는 대답은 두 달 뒤 요리사가 천동산으로 찾아왔을 때 나왔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道元の入宋」 · 『전좌교훈』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4. 1224~1225

    천동산에서 처음 참선한 스승이 1224년 겨울에 세상을 떠나자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천동산 주지가 된 여정(如浄)에게 참선합니다. 여정에게 참선한 직후 함께 건너온 明全이 세상을 떠납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道元の入宋」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여정을 만난 해는 이 글에 적히지 않음)

  5. 1227

    스물여덟의 가을 여정에게서 사서(법이 전해졌음을 증명하는 글)를 받고, 8월 무렵 배를 타 귀국합니다. 이 해에 『보권좌선의』를 짓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建仁寺から深草へ」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6. 1231

    『변도화』를 씁니다. 여기에 「仏法には修証これ一等なり」(불법에서는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라고 적습니다. 기록

    『변도화』(1231)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7. 1233

    후카쿠사에 흥성사를 열 때 『보권좌선의』를 깨끗이 옮겨 씁니다. 이 자필본(1233)은 영평사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福井県史』는 이 책을 1227년에 지은 것으로 보고, 1233년 본은 6년 뒤 청서한 것으로 읽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建仁寺から深草へ」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원본 자료」

  8. 1243

    仁治 4년(1243) 7월 에치젠(지금의 후쿠이현)으로 옮깁니다. 『福井県史』는 7월 7일에는 興聖寺에 있었고 閏7월 1일에는 吉峰寺에서 『정법안장』 「三界唯一心」 권을 설시했다고 적으며, 이때부터 11월 13일까지 吉峰寺에서 16권을 설시했다고 합니다. 『建撕記』는 7월 16일 우지를 떠나 7월 말 吉峰寺에 들어갔다고 적습니다. 『정법안장』의 설시는 에치젠 이전에도 이어져 왔으니(위 1231년 칸의 『변도화』처럼) 이 해가 시작은 아닙니다. 『福井県史』는 『정법안장』 각 권 끝글로 거처를 좇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永平寺の開創」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仁治 4년 = 1243년은 이 사전이 셈함)

  9. 1244~1246

    1244년 7월 18일 大仏寺에서 개당 설법을 하고, 1246년 6월 15일 大仏寺를 永平寺(영평사)로 고칩니다. 두 일 모두 『영평광록』에 실려 있다고 『福井県史』가 적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永平寺の開創」 (寛元 2년 = 1244년 · 寛元 4년 = 1246년은 이 사전이 셈함)

  10. 1247~1248

    1247년 8월 집권 호조 도키요리의 초청으로 가마쿠라에 가서 설법하고, 이듬해 3월 돌아옵니다. 『福井県史』는 이 가마쿠라행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듯하고 반성한 흔적이 있다고 읽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永平寺の開創」

  11. 1253

    1252년 가을 병이 나 이듬해 7월 영평사에서 물러나고, 8월 5일 제자 懐奘와 함께 교토로 떠나 속가 제자 覚念의 집에서 8월 28일 세상을 떠납니다. 54세였다고 『福井県史』가 적습니다. 기록 · 2차 경유

    『福井県史』 通史編2 中世 「永平寺の開創」 library-archives.pref.fukui.lg.jp (建長 4년 가을 = 1252년은 이 사전이 셈함)

핵심 생각

수행과 깨달음은 하나

『변도화』에서 도겐은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영상 진행자는 이를 깨닫기 위해 닦는 게 아니라 닦고 있는 그 모습이 이미 깨달음이라는 말이라고 풀어 줍니다. 기록 · 해석

『변도화』(1231)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 풀이는 영상 진행자의 것

몸가짐의 법도가 곧 가르침의 알맹이

『정법안장』 「洗浄」 권은 몸을 씻어 깨끗이 하는 법을 말하면서 「作法これ宗旨なり」라고 적고, 뒷간(東司) 쓰는 법도 적습니다. 도겐은 몸의 일 하나하나를 수행으로 적었습니다. 기록

『정법안장』 「洗浄」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가득 차면 한쪽이 모자란 듯 느낀다

『정법안장』 「현성공안」에서 도겐은 법이 몸과 마음에 아직 덜 찼을 땐 이미 넉넉하다 여기고, 가득 차면 「ひとかたはたらず」(한쪽이 모자란 듯) 느낀다고 적었습니다. 영상은 이 대목을 부끄러움을 적은 퇴계의 발문과 나란히 놓습니다. 기록 · 요지

『정법안장』 「현성공안」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삶과 죽음 속의 부처

『정법안장』 「생사」에서 도겐은 옛 선사 두 사람(夾山·定山)의 말을 끌어 「生死ノナカニ佛アレハ。生死ナシ」, 「生死ノナカニ佛ナケレハ。生死ニマトハス」라고 적었습니다. 이 말 짝은 선종 기록에서 도겐 본문과 다르게 전해지고, 도겐 자신의 말이 아니라 끌어 온 말입니다. 기록

『정법안장』 「생사」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모든 있음이 곧 불성

『정법안장』 「불성」의 「悉有は仏性なり」를 영상은 「모든 존재가, 곧 불성(부처의 성품)」으로 풉니다. 이는 「一切衆生 悉有佛性」을 「悉有가 곧 佛性」으로 읽은 도겐의 독법이며, 불성을 씨앗이나 바탕으로 보는 읽기는 물리칩니다. 영상은 이것을 「도겐의 읽기」로 밝힙니다. 기록 · 해석

『정법안장』 「불성」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남긴 말

수행과 깨달음은, 하나다.

仏法には修証これ一等なり

『변도화』(1231)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몸가짐의 법도, 그것이 곧 가르침의 알맹이.

作法これ宗旨なり

『정법안장』 「洗浄」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부처의 법을 닦는 일은, 나를 위해서도 하지 않거늘, 하물며 이름과 이익을 위해서겠소.

夫佛法修行者。尚不爲自身。況爲名聞利養修之乎

『학도용심집』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문득 부끄러워 놀란 마음이 일었다.

忽然發慚驚心

『전좌교훈』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모든 존재가, 곧 불성(부처의 성품).

悉有は仏性なり

『정법안장』 「불성」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해석

시대와 영향

영상 속 새벽 산길의 퇴계와 도겐의 만남은 두 사람의 글로 꾸민 가상의 대화이고, 두 사람은 시대와 나라가 달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도겐의 말은 『정법안장』 「사선비구」·「현성공안」·「생사」와 『전좌교훈』·『학도용심집』에서 뜻을 옮긴 것이고, 요리사가 손가락을 꼽았다는 기록은 없어 그 손 장면은 재구성입니다. 도겐의 얼굴은 가마쿠라 시대 초상(후쿠이 호쿄지 소장 「月見の像」)을 바탕으로 그린 모습이고 제작 시기와 찬(賛)의 자필 여부는 논쟁 중입니다.

도겐이 1233년에 옮겨 쓴 『보권좌선의』 자필본은 영평사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영평사는 1246년 도겐이 大仏寺를 고쳐 부른 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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