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높고 검은 망사 모자를 쓰고 깃에 검은 선을 두른 흰 포(심의)를 입은, 콧수염과 턱수염의 퇴계를 상상해 그린 세피아 판화풍 초상.상상으로 그린 모습

퇴계 이황

1501~1570년

생몰 연도는 음력입니다. 1501년 11월 25일에 태어나 1570년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고, 양력으로 바꾸면 1502년 1월 13일과 1571년 1월 13일이어서 양력으로 적는 자료(한국어 위키백과)는 1502~1571년으로 적습니다. 이 사전은 연보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따라 1501~1570년으로 적습니다. 나이는 모두 세는나이입니다.

묻고 따진 조선의 학자 퇴계

삼 년 전엔 흠잡을 데 없다 여긴 내 글이, 다시 읽으니 몹시 부끄러웠다오.
제15국 · 재구성 · 두 사람의 글로 다시 그린 가상의 대화

소개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영상은 그를 「묻고 따진 조선의 학자」로 소개합니다.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나 송나라에서 건너온 공부, 곧 성리학을 평생 붙들었습니다. 기록

쉰아홉이던 1559년부터 퇴계는 서른셋의 기대승과 착한 마음과 감정의 뿌리를 두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단칠정을 두고 오간 논변은 1559~1566년 여덟 해 이어졌고(두 사람의 편지는 1570년 11월까지 계속됩니다), 그 사이 퇴계는 자기 문장을 고쳤습니다. 고치기 전 글자와 고친 글자는 지금도 문집의 「改本」에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기록

퇴계가 끝까지 이치도 스스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지켰다는 것은 학자들의 읽기입니다. 기대승은 第三書에서 퇴계의 두 구절을 「매우 정밀하다(甚精密)」고 한 뒤, 「七情則兼有 而四端則只有理發一邊」(칠정에는 이치가 일어나는 쪽도 기운이 일어나는 쪽도 있고, 사단은 이치가 일어나는 쪽뿐이다)이라며 사단과 칠정을 둘로 가르는 데 맞섰습니다. 영상 진행자는 퇴계가 지킨 것을 「뿌리」라고 읽습니다. 해석

1553년 가을에 쓴 「정재기」를 1556년에 다시 읽고 「몹시 부끄러웠다」는 뜻의 발문을 남기고 글을 고쳐 씁니다. 문집에 실린 것은 이 고쳐 쓴 「정재기」인데, 여기서 그는 고요에 잠겨 세상일을 끊는 것을 불교와 노장의 치우침이라 했습니다. 기록

1568년 음력 12월, 예순여덟의 퇴계는 열일곱 살 임금(선조)에게 『성학십도』와 차자를 올렸습니다. 병든 몸으로 직접 만드느라 눈은 어둡고 손은 떨려 글씨가 반듯하지 못하다고 적었고, 열 장의 그림은 모두 경(敬)을 중심에 둔다고 했습니다. 기록

1570년 음력 12월 8일 마지막 날 아침, 퇴계는 시중드는 사람에게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게 했다고 연보가 전합니다. 연보는 그날 한 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기록 · 후대 편찬

생애 연표

  1. 1501

    음력 11월 25일 예안현 온계리에서 태어납니다. 연보는 이날을 「十一月二十五日己亥」로 적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양력으로 1502년 1월 13일로 적습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1 첫머리 위키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황」

  2. 1534

    3월 문과에 급제합니다. 연보는 이때를 「先生三十四歲」(세는나이 34)로 적습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1 嘉靖 13년(甲午) 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황」

  3. 1553~1556

    1553년 가을에 「정재기」를 쓰고, 1556년에 다시 읽고 부끄러워 발문을 적고 글을 고쳐 씁니다. 문집에 실린 것은 고쳐 쓴 글입니다. 기록

    「靜齋記」(『퇴계선생문집』 권42)와 발문(문집에 실린 본문은 1556년 개찬본)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4. 1559

    쉰아홉의 퇴계가 서른셋의 기대승에게 첫 편지를 보냅니다. 기대승은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막 벼슬길에 오른 때였습니다. 기록

    『퇴계선생문집』 권16 「與奇明彦 己未」(1559)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5. 1560

    연보가 庚申(1560)년 조에 「陶山書堂成」이라 적은 도산서당이 이루어집니다. 다만 퇴계 자신은 「陶山雜詠幷記」에서 정사년(1557)부터 신유년(1561)까지 5년 만에 서당과 정사 두 채가 대략 이루어졌다고 적어, 완성 연도는 자료에 따라 1560년 또는 1561년으로 갈립니다. 연보는 1557년에 서당 터를 얻었다고도 적습니다. 같은 해(1560) 「迎鳳書院記」에 「爲己之學」(나를 위한 공부)이라는 말을 적습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1 庚申(1560) 조 · 『퇴계선생문집』 권3 「陶山雜詠幷記」 · 『퇴계선생문집』 권42 「迎鳳書院記」(뒤 문장의 근거)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6. 1566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변이 이 무렵까지 이어집니다. 「重答奇明彦」(권17, 1566)에서 퇴계는 「옛사람이 말한 바(昔人所謂)」라며 「始參差而異序 卒爛熳而同歸」(처음엔 어긋났어도 끝내 활짝 피어 한곳으로 돌아간다)라고 답합니다. 이 구절은 한유 「別知賦」의 「始參差以異序 卒爛漫而同流」와 몇 글자가 다릅니다. 기록

    『퇴계선생문집』 권17 「重答奇明彦」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7. 1568

    음력 12월 『성학십도』와 차자를 임금에게 올립니다. 연보는 열 장의 그림 이름을 적고, 임금이 「학문에 몹시 절실하다」며 병풍과 서첩으로 만들어 들이라고 했다고 전합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2 戊辰(1568) 12월 조 · 「進聖學十圖箚」(『퇴계선생문집』 권7)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8. 1570

    음력 12월 8일(辛丑) 저녁 무렵 세상을 떠납니다. 연보는 이날 아침 매화에 물을 주게 했고, 자리를 바로 하게 한 뒤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아 편안히 떠났다고 적습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2 庚午(1570) 12월 조(류성룡 엮음)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9. 1576

    연보는 萬曆 4년 丙子(1576) 12월 조에 「贈諡曰文純」(문순이라는 시호를 내림)이라고 적습니다. 연보는 시호의 뜻을 「道德博聞曰文 中正精粹曰純」으로 풀어 둡니다. 기록 · 후대 편찬

    『퇴계선생연보』 권2 「四年丙子」 조(萬曆 4년 = 1576년은 이 사전이 셈함)

핵심 생각

착한 마음과 감정의 뿌리, 그리고 고친 문장

퇴계가 기대승에게 처음 보낸 문장은 「四端之發純理故無不善 · 七情之發兼氣故有善惡」(착한 마음은 순수한 이치에서 나와 선하지 않은 것이 없고, 감정은 기운도 함께 들어 있어 선도 악도 있다)였고, 이것은 정지운의 천명도 문구 「四端發於理 · 七情發於氣」를 퇴계가 이미 한 번 고친 글입니다. 기대승의 비판을 받으며 논변을 거친 뒤 「四則理發而氣隨之 · 七則氣發而理乘之」(착한 마음은 이치가 일어나고 기운이 따르며, 감정은 기운이 일어나고 이치가 올라탄다)로 다듬었습니다. 「四端是理之發」은 주희의 말이라 퇴계의 문장으로 쓰지 않습니다. 기록

『퇴계선생문집』 권16 「與奇明彦 己未」(1559, 처음 문장) · 「答奇明彦 論四端七情第二書」(다듬은 문장)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말 탄 사람의 비유

퇴계는 옛사람의 비유를 빌려 이치가 기운을 타는 것을 사람이 말을 타고 드나드는 것에 견주었습니다. 사람은 말 없이 나서지 못하고 말은 사람 없이 길을 잃으니, 둘은 서로 의지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퇴계는 같은 글에서, 사람이 가는 것만 가리켜 말하면(말은 그 속에 있다) 착한 마음(四端), 말이 가는 것만 가리켜 말하면(사람은 그 속에 있다) 감정(七情)이라고 직접 짝지었습니다. 기록

『퇴계선생문집』 권16 第二書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경(敬) —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모으는 것

「進聖學十圖箚」에서 퇴계는 한 그림을 놓고 생각할 때는 다른 그림이 있는 줄 모르는 듯이, 한 일을 익힐 때는 다른 일이 있는 줄 모르는 듯이 하라고 일렀고, 『성학십도』 열 장이 모두 경(敬)을 중심에 둔다고 풀었습니다. 경은 퇴계가 지은 말이 아니라 정이·주희의 「主一無適」을 퇴계가 공부의 중심으로 삼은 것입니다. 기록

「進聖學十圖箚」(『퇴계선생문집』 권7) · 『성학십도』 대학도 해설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나를 위한 공부

「迎鳳書院記」(1560)의 「爲己之學」을 영상은 남에게 보이려는 공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공부라고 옮깁니다. 영상 진행자는 같은 곳을 가리키면서 퇴계는 나를 깨워 세웠고 도겐은 나를 내려놓았다고 읽습니다. 기록 · 해석

『퇴계선생문집』 권42 「迎鳳書院記」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 뒤 문장은 영상 진행자의 읽기

잊지도 말고 억지로 돕지도 말고

퇴계는 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勿忘勿助」(『맹자』의 「心勿忘 勿助長」에서 나온 말)를 참으로 얻으면 터럭만큼이라도 더 힘쓸 곳이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영상은 가운데 구절을 줄여 옮겼습니다. 기록 · 요지

「答金而精」 별지(『퇴계선생문집』 권29)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남긴 말

착한 마음은 이치가 일어나 기운이 따르고, 감정은 기운이 일어나 이치가 올라타는 것이오.

四則理發而氣隨之 · 七則氣發而理乘之

『퇴계선생문집』 권16 「與奇明彦 己未」(1559, 처음 문장) · 「答奇明彦 論四端七情第二書」(다듬은 문장)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삼 년 전엔 흠잡을 데 없다 여긴 내 글이, 다시 읽으니 몹시 부끄러웠다오.

當時自以爲無可訾也 … 心甚愧惕

「靜齋記」 발문(『퇴계선생문집』 권42, 1556)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한 가지 일을 하실 때는, 다른 일이 있는 줄 모르는 듯이 하소서.

就一圖而思 … 如不知有他事

「進聖學十圖箚」(『퇴계선생문집』 권7, 1568년 음력 12월)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처음엔 어긋났어도, 끝내 활짝 피어 한곳으로 돌아간다.

始參差而異序 卒爛熳而同歸

「重答奇明彦」(『퇴계선생문집』 권17, 1566)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잊지도 말고, 억지로 돕지도 않는 그 사이를 참으로 얻으면, 터럭만큼이라도 더 힘쓸 곳이 있겠는가.

當其眞得勿忘勿助 … 更有甚纖毫着力處耶

「答金而精」 별지(『퇴계선생문집』 권29) — 생각의 대국 제15국 설명란 「사료와 출처」 기록 · 요지

시대와 영향

영상 속 새벽 산길의 퇴계와 도겐의 만남은 두 사람의 글로 꾸민 가상의 대화이고, 퇴계(1501~1570)와 도겐(1200~1253)은 시대와 나라가 달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퇴계의 말은 「정재기」와 그 후기, 「진성학십도차」, 「答金而精」 등에서 뜻을 옮긴 것이고 서로에게 하는 말은 꾸며 낸 것입니다. 퇴계의 얼굴은 상상으로 그린 모습입니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별세한 뒤 1572년에 찍은 목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습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4년 뒤인 1574년 고장 선비들이 도산서당 뒤에 도산서원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하고 편액을 받았고, 도산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 아홉 곳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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