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나옹 — 상상으로 그린 모습상상으로 그린 모습

나옹 혜근

1320년~1376년

바로 여기라던 나옹

지금 눈앞에 또렷이, 이 말을 듣는 이는 누구요. 저마다 살펴보시오.
제7국 · 재구성 · 요지 · 『나옹화상어록』 보설

소개

나옹 혜근은 1320년 고려 영해부에서 태어나 1376년 여흥(지금의 여주) 신륵사에서 숨진 선승입니다. 기록

원나라에 건너가 지공과 평산 처림에게 배우고 1358년 고려로 돌아왔습니다. 기록

1371년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양주 회암사를 크게 고쳐 지었습니다. 기록

1376년 회암사 법회에 사람이 몰리자 조정은 그를 밀성(지금의 밀양)으로 보냈고, 그는 가는 길에 신륵사에서 숨졌습니다. 기록

그의 말과 시는 제자들이 엮은 『나옹화상어록』과 『가송』으로 전합니다. 기록

생애 연표

  1. 1320

    음력 1월 15일 영해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아(牙)씨, 처음 이름은 원혜입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a~b(延祐庚申正月十五日生)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1339

    스무 살 무렵 이웃 친구가 죽자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었으나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는 공덕산의 요연에게 가서 출가했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b(年甫冠 隣友亡 問諸父老曰 死何之)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年至二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1339년, 20세)

  3. 1344

    양주 회암사에 들어가 밤낮으로 홀로 앉아 수행했습니다. 행장은 네 해 동안 힘써 닦다가 문득 깨쳤다고 적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b(至正甲申 至檜巖 晝夜獨坐 忽得開悟)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勤脩四載)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4년간 수행)

  4. 1347~1350

    음력 1347년 11월 원나라로 떠나, 1348년 대도에서 지공을 만나 배웠고, 1350년 강남에서 평산 처림을 만났습니다. 기록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丁亥十一月 發足向北 · 戊子三月十三日 大都法源寺) ·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b(戊子三月 至燕都 叅指空 · 秋八月 叅平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1355

    가을,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대도의 광제사에 머물렀습니다. 이듬해 음력 10월 15일 개당 법회에는 황제가 원사(院使)를 보내 금란가사를 내렸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c(乙未秋 奉聖旨 住大都廣濟寺 · 帝遣院使)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6. 1358

    음력 3월 지공에게 하직하고 고려로 돌아왔습니다. 원나라로 떠난 지 열 해 남짓 만입니다. 기록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戊戌三月二十三日 禮辭指空) ·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c(戊戌春 辭指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우리역사넷 「나옹혜근」 우리역사넷

  7. 1361

    겨울, 공민왕이 궁으로 불러 설법을 듣고 신광사에 머물게 했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c(辛丑冬 … 請住神光寺)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8. 1361

    음력 11월 홍건적이 서울 일대를 휩쓸자 승려들이 피하자고 청했습니다. 그는 '오직 명(命)을 지킬 뿐, 도적이 어찌하겠는가'라고 답했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c(唯命是保 賊何能爲)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唯命是保 賊軰何關汝事)

  9. 1370

    음력 9월 광명사에서 승려들의 공부를 시험하는 공부선(功夫選)을 주관했고, 공민왕이 직접 와서 보았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09a~b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0. 1371

    음력 8월 26일 공민왕의 왕사로 책봉되어 '보제존자' 호를 받고, 송광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09b(辛亥八月二十六日 … 封爲王師)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1. 1372~1376

    1372년 가을 회암사로 옮겨 머물렀고, 스승 지공의 뜻을 이어 회암사를 크게 고쳐 짓는 일을 이끌었습니다. 제자 각굉의 행장은 1374년 봄 왕의 청으로 다시 회암사에 머물게 되자 대중에게 전각을 고쳐 짓게 했다고 적습니다.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1374년 중수 시작) · 우리역사넷 「나옹혜근」 우리역사넷(1374년부터) ·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09b(壬子秋 … 欲移錫檜巖 … 得請居焉 … 迺謀於衆 增廣殿宇 工旣告畢 丙辰四月 大設落成之會 — 시작 연도는 적지 않음)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ABC_BJ_H0103_T_002 707b

  12. 1376

    음력 4월 15일 회암사 낙성 법회에 귀한 이 천한 이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절 문이 메었습니다. 사헌부와 도당이 막으려 했으나 막지 못했다고 『고려사』는 적습니다. 조정은 그를 밀성의 영원사로 옮기게 했습니다. 기록

    『고려사』 권133 열전46 우왕 2년 4월 · 『고려사절요』 권30 우왕 2년 4월(zh.wikisource 원문)(中外士女 無貴賤 … 放于慶尙道密城郡) ·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09b(移住瑩源寺)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四月十五日 大設落成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E0032895(밀양의 영원사)

  13. 1376

    병든 채 떠나며 우는 대중에게 '힘쓰고 힘써라, 나 때문에 그만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배로 이레 동안 강을 거슬러 여흥 신륵사에 닿았고, 음력 5월 15일 아침(진시) 숨졌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a(努力努力 無以余故中輟也 · 泝流七日 · 五月十五日 … 辰時 寂然而逝) ·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3a~709a, ABC_BJ_H0103_T_002 · 『고려사』 권133 열전46 우왕 2년 4월 · 『고려사절요』 권30 우왕 2년 4월(zh.wikisource 원문)(行至驪興神勒寺死)

  14. 1377

    조정이 '선각(禪覺)'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색이 지은 탑명을 새긴 비가 회암사에 세워졌습니다. 기록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a·711a(諡曰禪覺 命臣穡爲文 · 宣光七年 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혜근」 한국민족문화대백과(1377년 회암사 비석)

  15. 1379

    신륵사에 그의 사리를 모신 석종 모양 승탑과, 이색이 글을 지은 석종비가 세워졌습니다. 기록

    디지털인문학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문」(찬 이색, 蒼龍己未) dh.aks.ac.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E0032895(1379년, 보물)

핵심 생각

지금 듣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설법을 듣는 사람들에게, 지금 눈앞에 또렷이 이 말을 듣는 이가 누구인지, 합장하고 절하는 이가 누구인지 저마다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나옹화상어록』 — 『한국불교전서』 6책, ABC_BJ_H0103_T_004 보설 715a(只這目前 孤明歷歷 能聽普說者是誰 … 各自點撿看) ·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09a~711a, 동국대 ABC ABC_BJ_H0103_T_003 710b 출가 문답(此能言能聽者)

마음은 늘 눈앞에 있다

이 마음은 늘 눈앞에 있지만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애써 찾을수록 더 멀어진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나옹화상어록』 — 『한국불교전서』 6책, ABC_BJ_H0103_T_004 「自恣日趙尙書請普說」 714c(此心常在目前 … 着意求之 轉求轉遠) · 같은 책 보설 715a(只這目前)

아플 때도, 시끄러울 때도 살피기

병든 수행승에게는 지금의 아픔이 어디서 왔는지, 아픈 줄 아는 이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에게는 고요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붙든 물음(화두)을 끊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기쁠 때나 화날 때나 화두가 저절로 드러나는 데까지 이르면 깨침이 가깝다고 했습니다. 기록 · 요지

『나옹화상어록』 — 『한국불교전서』 6책, ABC_BJ_H0103_T_004 「因雲禪者有疾示之」 724c · 「示志得侍者」 724c~725a

남긴 말

바로 이 눈앞에 홀로 밝고 또렷하게, 이 설법을 듣는 이는 누구인가. 합장하고 인사하는 이는 누구인가.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누구인가. 저마다 살펴보라.

只這目前 孤明歷歷 能聽普說者是誰 合掌問訊底是誰 低頭禮拜底是誰 各自點撿看

『나옹화상어록』 보설(普說) — 『한국불교전서』 6책 715a 기록 · 인용
지금 아프고 괴로운 것은 어디서 왔는가. 또 아픈 줄 아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펴보라.

現今痛苦者 從何處來 又能知痛者 是个甚麽 請如此審察

『나옹화상어록』 「因雲禪者有疾示之」(병을 앓는 운 선자에게) — 『한국불교전서』 6책 724c 기록 · 인용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왔을 뿐입니다. 다만 닦아 나아가는 법을 모릅니다.

此能言能聽者 能來爾 但未知脩進之術

이색 「普濟尊者諡禪覺塔銘」(1377) — 『한국불교전서』 6책 710b · 각굉 「행장」 703a(문장이 조금 다름) 기록 · 인용
(한 스님이 물었다) 몸을 이룬 네 요소가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승이 두 주먹을 가슴에 모으고) 다만 여기에 있다.

四大各離 向什麽處去 … 師交拳當心云 只在這裏

각굉 「懶翁和尙行狀」 — 『한국불교전서』 6책 708a 기록 · 인용

시대와 영향

나옹은 원나라의 수도 대도와 강남을 오가며 지공과 평산 처림에게 배웠고, 원 황제의 명으로 대도 광제사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1361년에는 홍건적이 고려 서울 일대를 휩쓸어 조정이 남쪽으로 피란했습니다. 그가 숨진 1376년은 우왕 2년으로, 『고려사』는 이 일을 우왕 열전에 적었습니다.

그의 말과 시는 『나옹화상어록』과 『가송』으로 전합니다. 1379년 신륵사에 세운 석종 모양 승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학 자초 등 그의 제자들은 그가 숨진 뒤에도 그를 기리는 불사를 이어 갔습니다.

흔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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