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세종대왕 — 상상으로 그린 모습상상으로 그린 모습

세종대왕

1397~1450년

말을 적은 세종대왕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
제5국 · 재구성 · 요지 · 『훈민정음』 어제 서문(1446 책)

소개

세종대왕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나라를 다스린 조선의 네 번째 임금입니다. 기록

1443년 음력 12월, 말소리를 적는 새 글자 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 불렀습니다. 기록

1446년 음력 9월에는 새 글자의 원리와 쓰는 법을 풀이한 책 『훈민정음』이 완성되었습니다. 기록

그는 서문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이 많아 이를 딱하게 여겨 글자를 만들었다고 적었습니다. 기록 · 요지

그가 다스린 때에 집현전이 학자들을 길렀고, 측우기·자격루 같은 기구와 농서 『농사직설』이 나왔습니다. 기록

생애 연표

  1. 1397

    음력 4월 10일(실록: 4월 임진일),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한양 준수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1권 총서(sillok.history.go.kr/id/kda_000) · 우리역사넷 「세종 1397~1450」(contents.history.go.kr, levelId=kc_n30580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종」(최승희 집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29857)

  2. 1418

    음력 8월, 아버지 태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했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8월 11일 무자 1번째 기사(즉위 교서, kda_10008011_001) · 우리역사넷 「세종 1397~1450」(contents.history.go.kr, levelId=kc_n30580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종」(최승희 집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29857)

  3. 1420

    음력 3월, 궁궐 안에 집현전을 새로 두고 젊은 학자들이 경전과 역사를 강론하며 임금의 물음에 대비하게 했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3월 16일 갑신 1번째 기사(kda_10203016_00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집현전」(E0055081)

  4. 1429

    정초 등이 왕명으로 각 도 농부들의 경험을 모아 조선 풍토에 맞춘 농서 『농사직설』을 펴냈고, 이듬해 지방 관리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농사직설」(E0013114) ·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농서 간행」(hm_082_0020)

  5. 1432

    음력 11월, 큰 죄를 다루는 법 조항만이라도 이두로 옮겨 백성에게 알리자고 했습니다. 이조판서 허조가 반대했지만, 백성이 법을 모르는데 벌하는 것은 속임수에 가깝다고 되물었습니다. 기록 · 요지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 임술 1번째 기사(kda_11411007_001) · 김슬옹 「세종은 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까?」(충청리뷰, idxno=316852)

  6. 1430~1440년대

    압록강 상류에 자성·무창·우예군을 새로 두어 태종 때(1416) 둔 여연군과 함께 4군을 이루고, 두만강 쪽에 6진(1434~1449)을 두어 북쪽 경계를 두 강 유역까지 넓혔습니다.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종」(최승희 집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2985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육진」(E0042168) · 「사군」(E0025393)

  7. 1434

    음력 7월 1일부터, 장영실 등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격루」(E0047854) · 우리역사넷 「창경궁 자격루」(kc_r300785)

  8. 1441~1442

    1441년 음력 4월 실록에는 세자(뒷날의 문종)가 근년 들어 구리 그릇을 만들어 궁중에서 빗물을 재 왔다는 임금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같은 해 음력 8월 호조의 건의로 서운관과 지방 관아에 빗물 재는 그릇을 두는 제도가 마련되었고, 1442년 음력 5월 이를 고쳐 「측우기」라는 이름과 규격을 정했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92권 세종 23년 4월 29일 기사(kda_12304029_001) · 93권 세종 23년 8월 18일 기사(kda_12308018_004) · 96권 세종 24년 5월 8일 정묘 기사(kda_12405008_00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종」(최승희 집필, encykorea.aks.ac.kr/Article/E0029857) · 경향신문 이기환 2023.3.6

  9. 1443

    음력 12월, 임금이 직접 언문 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 불렀다고 실록은 적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 2번째 기사(kda_12512030_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글」(강신항 집필, E0061508)

  10. 1444

    음력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그들을 불러 따져 묻고 7명을 의금부에 가뒀다가 이튿날 풀어 주라고 명했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 기사(kda_12602020_00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최만리」(E0057279) · 프레시안 최태호 2023.5.5

  11. 1446

    음력 9월, 책 『훈민정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글날(10월 9일)은 이 책 끝의 「9월 상한(上澣)」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꿔 정한 날입니다. 기록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갑오 4번째 기사(kda_12809029_004) · 국립한글박물관 웹진 2018.10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글」(E0061508)

  12. 1450

    음력 2월 17일, 영응대군 집의 동별궁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록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2월 17일 임진 1번째 기사(kda_13202017_001) · 우리역사넷 「세종 1397~1450」(contents.history.go.kr, levelId=kc_n305800)

핵심 생각

백성도 법을 알아야 한다

세종대왕은 1432년, 백성이 어떤 죄가 무거운지 알아야 스스로 피할 수 있다며 큰 죄의 법 조항을 이두로 옮겨 알리자고 했습니다. 법을 알면 오히려 법을 악용한다는 반대에, 모르게 해 놓고 벌하는 것은 조삼모사 같은 술책에 가깝다고 답했습니다. 기록 · 요지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 · 김슬옹(충청리뷰, 「세종은 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까?」)

말소리를 그대로 적는 글자

어제 서문은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익혀 날마다 편하게 쓰도록 새 글자 28자를 만들었다고 밝힙니다. 기록 · 요지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어제 서문) ·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 서문(ko.wikisource 「訓民正音」 대조)

소리 내는 모양을 본뜬 글자

『훈민정음』의 해례(정인지와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여덟 학자가 쓴 풀이)는 기본 자음이 소리 낼 때의 발음 기관 모양을 본떴다고 풉니다. 예를 들어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입니다. 기본 모음 ㆍ·ㅡ·ㅣ는 하늘·땅·사람을 본떴다고 합니다. 기록 · 요지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牙音ㄱ,象舌根閉喉之形」, 「形之圓,象乎天」 등, ko.wikisource 「訓民正音」)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글」(E0061508)

새 글자도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것

1444년 최만리 등이 소리를 적어 글자를 합치는 방식이 옛것에 어긋난다고 하자, 세종대왕은 설총의 이두도 백성을 편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언문도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기록 · 요지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如其便民也, 則今之諺文, 亦不爲便民乎」) · 프레시안 최태호 2023.5.5

남긴 말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易習, 便於日用耳。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1446) 「御製曰」 기록 · 인용
백성이 법을 알지 못하는데 그 어긴 자를 벌한다면, 조삼모사의 술책에 가깝지 않겠는가?

民不知法, 而罪其犯者, 則不幾於朝四暮三之術乎?

『세종실록』 58권 세종 14년 11월 7일(1432) 기록 · 인용
만일 그것이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지금의 언문도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

如其便民也, 則今之諺文, 亦不爲便民乎?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1444) 기록 · 인용

시대와 영향

세종대왕이 즉위한 1418년, 조선의 글은 한자였고, 우리말을 적을 때는 한자를 빌려 쓰는 이두를 썼습니다. 세종대왕은 1432년 법 조항을 이두로 옮겨 알리자고 했고, 1444년 최만리 등과의 문답에서도 설총의 이두를 견주어 말했습니다. 그사이 1443년 음력 12월에 소리를 적는 새 글자 28자가 만들어졌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에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한글날(10월 9일)은 이 책 끝의 날짜를 근거로 정했고, 스승의 날(5월 15일)은 1965년부터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을 양력으로 바꾼 날로 정해 기념합니다.

흔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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