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GREAT GAMES OF THOUGHT
원효 — 상상으로 그린 모습상상으로 그린 모습

원효

617년~686년

마음을 본 원효

착각이라 해도, 그걸 알아보는 것 또한 마음이오.
제3국 · 재구성 · 『대승기신론』 각·불각 · 원효 소

소개

원효는 617년 압량군(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신라의 승려입니다. 기록

의상과 함께 두 번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지만 가지 않고 신라에 남았습니다. 기록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등을 남겼고, 서로 다른 불교 이론을 화해시키려는 화쟁 사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

『삼국유사』는 그가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뒤 스스로 소성거사라 부르며, 노래하고 춤추며 마을을 다녔다고 전합니다. 기록 · 설화

고려 숙종은 1101년 그를 대성화쟁국사로 추증했습니다. 기록

생애 연표

  1. 617

    진평왕 39년, 압량군 남쪽 불지촌(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설씨이고, 어릴 때 이름은 서당이었습니다. 기록

    『삼국유사』 권4 의해 「원효불기」("押梁郡南 … 佛地村", "眞平王三十九年 大業十三年丁丑", "俗姓薛氏", "小名誓幢") 위키문헌 · 국사편찬위 한국사DB 한국사DB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650

    의상과 함께 육로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요동에서 고구려 국경 수비병에게 첩자로 몰려 수십 일 갇힌 뒤 돌아왔습니다. 『삼국유사』는 이 일의 연도를 따로 적지 않았고, 650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이 잡은 연도입니다. 기록

    『삼국유사』 권4 「의상전교」("遂與元曉道出遼東 邊戍邏之爲諜者 囚閉者累旬") 국편 한국사DB 및 주석 228(『삼국유사』의 「영휘 초」는 의상이 당 사신의 배로 들어간 때) 한국사DB · 우리역사넷 「의상」 우리역사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650년 첫 시도 실패)

  3. 654~661(무열왕 때)

    『삼국유사』는 무열왕 때 원효가 요석궁의 과부 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가 향전(鄕傳)에서 옮긴 이야기입니다. 기록 · 설화

    『삼국유사』 「원효불기」("唯鄉傳所記有一二段異事", "時太宗聞之", "瑤石宮 … 寡公主", "生薛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태종무열왕 대(654~661)에 요석궁의 과부 공주를 만나")

  4. 661

    의상과 함께 바닷길로 다시 당나라로 향하다가 원효는 신라로 돌아왔고, 의상은 홀로 당나라로 갔습니다. 『송고승전』(988)은 이때 두 사람이 큰비를 만나 길가 흙굴에서 잤는데 아침에 보니 옛 무덤 곁이었고, 이튿날 밤 그 무덤에 머물 때 귀신이 나타나 괴롭혔다고 전합니다. 원효는 이 일로 '세 세계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것은 오직 앎'이라 깨달았다고 적습니다. 기록 · 설화

    『송고승전』(988) 권4 「당신라국의상전」("遭其苦雨 遂依道旁土龕間隱身", "明旦相視 乃古墳骸骨旁也", "又寄埏甓之中 夜之未央 俄有鬼物為怪", "三界唯心 萬法唯識", "我不入唐 却携囊返國", "湘乃隻影孤征") shidianguji.com · 우리역사넷 「의상」(661년 두 번째 유학길) · 『삼국유사』 「의상전교」 국편 주석 228(부석본비 661년)

  5. 연도 미상

    계를 잃고 설총을 낳은 뒤 속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불렀습니다. 기록

    『삼국사기』 권46 열전 설총("얼마 후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불렀다") 한국사DB · 『삼국유사』 「원효불기」("旣失戒生聰 已後易俗服 自號小姓居士")

  6. 연도 미상

    광대들이 쓰던 큰 박을 얻어 『화엄경』 구절에서 따 '무애'라 이름 붙이고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것을 들고 수많은 마을을 노래하고 춤추며 다녔다고 합니다. 기록 · 설화

    『삼국유사』 「원효불기」("偶得優人舞弄大瓠 … 以華嚴經一切無礙人一道出生死 命名曰無礙 仍作歌流于世 … 千村萬落且歌且舞") · 우리역사넷 「원효」 우리역사넷 (무애가)

  7. 연도 미상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등을 썼습니다. 그가 쓴 책의 수는 자료에 따라 70여 부 150권 남짓, 90종 가까이 200여 권, 100여 부 240여 권 이상 등으로 다르게 셉니다. 논쟁 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70여 부 150권 남짓") · 우리역사넷 「원효 사상」(대표 저술 세 권, "약 90종 200여 권") 우리역사넷 · 디지털경산문화대전 「원효」(GC08100658) grandculture.net · 전통문화포털(kculture.or.kr) bbIdx=8380

  8. 686

    수공 2년 3월 30일(당시 역법의 날짜) 혈사에서 70살로 입적했습니다. 기록

    고선사 서당화상비("수공 2년(686) 3월 30일 혈사에서 마치니, 나이 70이었다") 국편 한국사DB 한국사DB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686년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70세를 일기로 입적") · 『삼국유사』 「원효불기」(穴寺)

  9. 800~808(애장왕 때)

    손자 설중업이 주도하고 김언승이 후원해 원효의 일생을 새긴 고선사 서당화상비를 세웠습니다. 기록

    국편 한국사DB 「고선사 서당화상비」(연대 애장왕대 800~808) · 국가유산 지식이음 「경주 고선사 서당화상탑비」 portal.nrich.go.kr

  10. 1101

    고려 숙종이 조서를 내려 원효를 대성화쟁국사로 추증하고, 그가 살던 곳에 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승려 의천의 건의가 계기였습니다. 기록

    『고려사』 권11 세가 숙종 6년 8월 계사("追贈元曉大聖和靜國師") 한국사DB · 국편 『삼국유사』 주석(1101년 숙종 6 8월 조서로 화쟁국사비 건립) 한국사DB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효」(의천이 숙종에게 건의)

핵심 생각

모든 것은 한마음에서

원효는 모든 현상을 한마음(일심)의 입장에서 설명했습니다. 『금강삼매경론』의 대의(大意)는 '한마음의 근원은 있음과 없음을 떠나 홀로 맑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기록 · 요지

『금강삼매경론』 권상 대의(대정장 34권 No.1730, 961a) deerpark.app · 우리역사넷 「원효 사상」(일심) · 김태수, 「원효의 부정방식에 나타난 불교 논리학적 특성」 『인문논총』 47(경남대, 2018)

다투는 이론을 화해시키기(화쟁)

서로 다투는 불교 이론들을 하나만 고르지 않고, 각 견해의 뜻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함께 보게 해 화해시키려 했습니다. 이 생각을 담은 책이 『십문화쟁론』입니다. 해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쟁사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우리역사넷 「원효 사상」("다양한 불교 이론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일어난다

『송고승전』은 흙굴인 줄 알고 잔 첫날 밤은 편안했으나 무덤인 줄 알고 머문 이튿날 밤에는 귀신에 시달린 원효가,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흙굴과 무덤이 둘이 아니다'라고 깨달았다고 적습니다. 기록 · 요지

『송고승전』(988) 권4 「의상전」("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龕墳不二 … 三界唯心 萬法唯識") · 정병조, 『Master Wonhyo: An Overview of His Life and Teachings』(2010) IV장

걸림 없음(무애)

그는 『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은 한 길로 나고 죽음을 벗어난다'는 구절에서 '무애'라는 이름을 따왔습니다. 『삼국유사』는 그의 노래와 춤 덕분에 가난한 집 사람들까지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南無)'를 외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기록 · 설화

『삼국유사』 「원효불기」("一切無礙人一道出生死", "使桑樞瓮牖玃猴之輩 皆識佛陀之號 咸作南無之稱") · 우리역사넷 「원효」(무애가로 백성에게 가르침)

남긴 말

무릇 한마음의 근원은 있음과 없음을 떠나 홀로 맑고, 세 가지 공의 바다는 참과 속을 녹여 깊고 고요하다.

夫一心之源 離有無而獨淨 三空之海 融眞俗而湛然

『금강삼매경론』 권상 대의(대정장 34권 No.1730, 961a) 기록 · 인용
깨뜨림이 없으나 깨뜨리지 않음이 없고, 세움이 없으나 세우지 않음이 없다. 이치 없는 지극한 이치요, 그렇지 않은 크게 그러함이라 할 만하다.

無破而無不破 無立而無不立 可謂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矣

『금강삼매경론』 권상 대의(대정장 34권 No.1730, 961a) 기록 · 인용
세 세계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것은 오직 앎이다.

三界唯心 萬法唯識

『송고승전』(988) 권4 「당신라국의상전」 기록 · 인용

시대와 영향

원효가 유학을 꿈꾸던 무렵 당나라에는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이 있었고, 원효와 의상은 그 문하에서 배우려 했습니다. 원효의 삶을 전하는 기록은 그가 죽고 100여 년 뒤에 세운 서당화상비(800~808년 무렵), 송나라 찬녕의 『송고승전』(988), 고려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 등입니다.

그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과 일본 불교계에서 '해동소'라 불렸고, 중국 화엄종의 법장과 종밀도 이 책을 인용했습니다. 고려 중기 의천이 그를 다시 높였고, 숙종이 1101년 대성화쟁국사로 추증했습니다.

흔한 오해

더 읽을 책

등장한 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