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대국 · 제13국 · · 12분 49초 ·
안 될 것 같은 일, 끝까지 해야 할까?
계백×사나다 유키무라
안 될 것 같은 일 앞에서, 끝까지 해 보는 사람은 그때 무엇을 지키려는 걸까요? 「나라가 살지 망할지 알 수 없다」고 한 백제의 장수 계백과, 「하루 앞도 알 수 없습니다」라고 쓴 일본의 장수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에게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맞섬
계백과 사나다 유키무라, 두 사람
상상으로 그린 모습
상상으로 그린 모습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
1567(1570·1572설도 있음)~1615년「하루 앞도 알 수 없습니다」라고 쓴 일본의 장수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
하루 앞도 알 수 없습니다.재구성
반전 → 본질
그런데 두 사람은 죽음을 가까이 두었지만, 기록은 죽으러만 간 사람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끝까지 해 보는 것과, 누군가를 남기려는 마음. 둘은 서로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읽기
대본과 원전
영상의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록] 문헌으로 확인 · [요지] 원문을 줄여 옮김 · [후대 기록] 본인이 아닌 후대 사람이 남긴 기록 · [전승] 당대 문서로 확인되지 않고 후대에 전해 오는 이야기 · [2차 경유] 원문 면을 직접 못 보고 인용·해설을 통해 확인 · [기록 없음] 그 사람의 글이나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 말 · [해석] 학자·진행자의 해석
대본 전문
120줄 · 챕터 10개 · 줄마다 근거
화면 오른쪽 아래 작은 글자는 그림이 바뀔 때 그림의 종류(실제 초상화·실제 병풍 그림·육문전 문장·원문을 새로 조판·새로 조판한 글자·설명용 도해·상상으로 그린 장면 등)를 알려 줍니다. 판본과 원문 화면은 전사된 글자를 옛 종이 위에 새로 조판한 것이고, 편지 글씨 화면은 새로 만든 그림입니다. 계백의 가족 대목은 말로만 전하고, 사람은 그리지 않고 빈 들판만 보여 줍니다. 날짜는 일기·편지 모두 음력입니다.
0:00 · 안 될 것 같은 일, 끝까지 해야 할까?
0:33 · 우리의 장면 — 안 될 것 같은 일
1:14 · 계백 — 길목을 놓친 나라
2:46 · 좁은 길의 셈
3:34 · 네 번 — 같은 싸움, 세 기록
4:02 · 차마 — 적의 소년
5:08 · 사나다 — 정함 없는 세상
8:26 · 생각의 대국 — 다시 그 들판
8:59 · 반전과 본질
9:54 · 제 생각 — 대장부
원전과 연구
대조
- 기록『삼국사기』 계백 열전(권47, 1145) 「階伯,百濟人,仕為達率」 · 「簡死士五千人」 · 「以一國之人,當唐、羅之大兵,國之存亡,未可知也」 · 태어난 해와 고향은 기록에 없음 · 위키문헌 옥산서원본 전사와 글자 대조(한국사DB 국역·각주로 뜻 대조)
- 기록가족 대목 「恐吾妻孥,沒為奴婢,與其生辱,不如死快。遂盡殺之」는 열전 한 곳에만 있고 사건으로부터 485년 뒤 기록 · 후대의 평은 갈렸고, 권근의 비판(「不道」「狂悖殘忍」)과 그 반박은 안정복 『동사강목』 제4상(1778년 완성)에서 확인
- 기록맹세 「昔句踐以五千人,破吳七十萬衆,今之日,宜各奮勵決勝,以報國恩」(열전) · 구천의 5천 대 오나라 70만은 계백의 말 속 숫자이며 실제 전투 규모로 말한 것이 아님
- 기록흥수의 길목 방어안 「一夫單槍,萬人莫當」 · 「其言不可用也」 · 「又聞唐、羅兵已過白江、炭峴,遣將軍堦伯,帥死士五千,出黃山」(백제본기 의자왕 20년) · 「率精兵五萬」(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 · 계백 열전에는 신라군 숫자가 없어 「5천 대 5만」은 세 곳을 합친 수 · 진영 세 곳의 위치는 논란 중(이상훈, 「황산벌의 위치와 전투의 재구성」, 『서강인문논총』 60, 2021)
- 기록 · 같은 책 세 곳이 다름「네 번」: 백제본기 「四合皆勝之」 · 신라본기 「四戰不利,士卒力竭」 · 계백 열전 「如是進退,至四合,力屈以死」
- 기록신라본기 「階伯俾脱胄」 「愛其少且勇,不忍加害」 · 나이는 아버지 품일의 말 「吾兒年纔十六」 · 「新羅不可敵也,少年尚如此,況壯士乎」(관창 열전은 앞 구절이 다르고, 영상은 뒷 구절만) · 「以手掬井水飮之,更向敵陣疾鬪」 · 「階伯擒斬首」 · 관창 열전 「少而為花郞」 · 이 뒤 계백이 후회했다는 기록은 없음(열전·신라본기엔 「擒斬首」뿐)
- 기록『맹자』 공손추 상 「人皆有不忍人之心」 · 「先王有不忍人之心,斯有不忍人之政矣」 · 「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治天下可運之掌上」 · 등문공 하 2장 대장부 대목(혼례 비유 대목은 줄여 「……」로 보임) · 위키문헌 현대 표점본·조기 주 소본·주희 집주본 세 판본과 글자 대조 · [해석] 「넓은 집·바른 자리·큰 길」을 주희는 어짊·예·의로 풀었고, 영상은 이를 쉬운 말로 옮김
- 기록 · 해석란체스터: F. W. Lanchester, 『Aircraft in Warfare: The Dawn of the Fourth Arm』(London: Constable, 1916) 제5장 · 머릿수 제곱으로 벌어지는 힘(§27) · 옛 싸움처럼 일대일로 맞붙으면 머릿수에 비례(§20·§30) · 5천 대 5만 = 1 대 100, 좁은 앞면 = 1 대 10 · 좁은 골짜기에 이를 적용한 것은 이 영상의 읽기이고, 마음과 땅의 모양은 식에 없음
- 기록 · 2차 경유이름: 본인이 직접 쓴 이름은 노부시게(信繁)이고(1612년 출가 뒤에는 법명 好白로 서명한 편지가 있음) 「幸村」는 1672년 『難波戦記』에 처음 나온다고 알려짐 · 「幸村」 서명 사본 2통은 위작(丸島和洋 『真田信繁の書状を読む』 2016 · 平山優 『真田信繁』 2015)
- 기록 · 2차 경유구도산 시절의 편지(날짜 미상): 누이의 남편 오야마다 시게마사 앞 편지(2016년 자필 원본 확인 보도) · 소주를 항아리에 담아 보내 달라는 편지 · 가나 원문은 직접 못 보고 풀이로 옮김
- 기록 · 2차 경유오사카 입성 뒤의 편지(1615년): 2월 10일 이시아이 주조(사위) 앞 편지 — 도록 『秀吉と真田』(上田市立博物館, 2007) p.40 도판 수록, 풀이 「御見捨て無之ように頼入候」(국립국회도서관 레퍼런스 협동 DB 사례 경유) · 1615년 3월 오야마다 시게마사·유키토모 앞 편지 「定め無き浮世ニて候へば、一日さきハ不知事候。我々事などハ、浮世にあるものとハおぼしめし候まじく候」 — 사나다 보물관 소장, 국립국회도서관 서치 서지 (慶長20年)3月 · 사세구가 아니라 편지 구절 · 가나 원문은 직접 못 봄
- 기록1615년 5월 7일 오노 하루후사의 군령장: 섣불리 싸우지 말고 적을 끌어당겨 한 번 싸우라는 취지이며 이에야스 본진을 노린다는 말은 없음 · [해석] 「이길 길을 찾았다」는 이 취지의 읽기 · 본진 급습 「계획」은 후대 군기의 이야기
- 기록 · 2차 경유 · 편찬본 수록시마즈 다다쓰네의 편지(직접 싸우지 않고 전해 들은 말을 적음) 「…三度目に真田も討死にて候。真田日本一の兵、古よりの物語にもこれなき由」: 『薩藩旧記雑録』(19세기 편찬본) 수록분을 일본어 위키백과와 小林計一郎(2015)가 인용한 글로 대조 · 시마즈 군은 겨울·여름의 진에 모두 불참 · 「由」(~라고들 한다) 그대로 그날 돈 말 · 편지의 「御所様」가 누구인지는 편지만으로 특정되지 않음
- 기록 · 2차 경유『言緒卿記』 5월 7일 「大坂落城す。天王寺にて、真田、たびたび武辺、其の後、討死なり」 · 구로다 병풍(『大坂夏の陣図屏風』) 우측에 붉은 갑옷의 사나다 군이 그려짐
- 전승도쿠가와 쪽이 땅을 줄 테니 돌아서라고 달랬다는 이야기(『慶長見聞書』 계열) · 땅의 크기는 10만 석·신슈 한 나라·40만 석으로 이야기마다 다름 · 당대 문서로 확인되지 않음
- 후대 기록사나다 맏아들: 입성 동행은 『高野春秋』, 순사는 후대 군기류에 있고 당대 문서는 확인 못 함
- 기록 · 2차 경유사나다마루의 위치와 쓰임은 학자마다 다름(千田嘉博) · 화의로 메워진 남쪽 해자는 물 없는 해자
- 기록사나다 1567(1570·1572설도 있음)~1615 · 계백 생년 미상~660 · 형이 이은 집안은 1622년 마쓰시로번을 거쳐 1871년 폐번치현까지 이어짐
- 해석집안을 남기려 갈랐다는 설명(통설)도, 아내들의 인척 관계로 갈렸다는 설명도 전합니다. 세 사람의 밀담 자체를 적은 당대 사료는 없습니다.
- 해석영상 끝 「제 생각 — 대장부」는 진행자의 의견입니다. 『맹자』와 이어 읽은 것은 이 영상의 읽기이며, 두 사람이 그런 뜻으로 말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PD-Art) · 소장 上田市立博物館: 「真田幸村像」(작자 미상, 에도 시대)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PD-Art) · 소장 大阪城天守閣: 『大坂夏の陣図屏風』 우측(구로다 병풍, 17세기, 작자 미상, 중요문화재) · 변경: 원본 스캔에서 본진 부분과 붉은 갑옷 부분만 잘라 옛 종이 위에 얹음
육문전: 사나다 집안 문장의 전통 도안을 다시 그림
그 밖의 인물 그림과 장면은 기록과 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으로 그린 장면입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영상 댓글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바로잡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
끝까지 해 보되, 모두가 살아남을 길을 함께 찾는 것. 두 장수가 남긴 말을, 저는 그렇게 읽습니다.
여러분은 안 될 것 같은 일 앞에서, 이기는 것 말고 무엇을 지키시겠습니까?
유튜브 댓글로 생각 나누기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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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05제11국·이순신×아우렐리우스
이순신은 왜 같은 날 일기를 두 번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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